삶과 죽음
지금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레이건 대통령의 국장으로 온통 애도의 물결이다.
나이가 들어서 일까?
지난주에는 내 삶의 정신적 의지가 되어주셨던 어머님께서 89 세에 운명하셨고, 금주에는 레이건 대통령 93 세에 서거하여 수십만 명의 조문행렬과 국장거행 장면이 연일 TV에 중개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더 생각을 하게 된다.
5 년 전까지만 해도 장례식에는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죽음에 대한 거부현상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요즘은 죽음이 두렵기 보다는 누구 나에게 다 오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어머님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는 내 차례라는 생각에 죽음의 현실과 가까워진 자신을 발견한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10 여일 전 저녁이었다. 하루 일과로 지쳐서인지 컴퓨터 작업을 하는데 졸음이 쏟아져서, 잠시 쉬면서, 어머님께 국제 전화를 걸었다. 이미 어머님은 겨우 “누구냐, 그래, 잘 있어라...” 할 정도만 겨우 말씀하실 기력이셨다.
형님이 거들어서 간신히 어머님과 그렇게 몇 마디 전화통화를 한 직후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을 느꼈었다. 다음날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그 정신이 번쩍 들었던 체험을 이야기 했더니, 돌아 가시기전에 누군가 마음에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더러 그런 현상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어머님께서 돌아가실 날이 임박했으며, 어머님의 평소 강건하셨던 총명을 이 불효자에게 마지막으로 주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구를 위한 장례 의식일까?
자식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너나할 것 없이 살아계셨을 때 “좀더 잘해 드렸을 걸” 하는 후회들을 하게 마련이다.
이번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너는 생각보다 매몰찬 사람이다”라는 말을 더러 들었다. 외국에 살고, 짧은 3 일장, 회복사역 스케줄, 생업 등등의 이유로 어머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내 마음에는 비록 돌아가셨어도 어머님의 영혼은 내 안에 함께 계신다는 생각에 장례의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주요 동기였다.
공교롭게도 1 주일 안에 어머님과 레이건 대통령의 마지막 가시는 길들을 보면서, 장례식은 죽은 사람보다도 산 사람들을 위한 의식인 것 같다는 생각을 더하게 된다.
처음 세상에 올 때는 모두가 빈손으로 두 주먹만 불끈 쥐고 태어나서, 너나 할 것 없이 상황이 똑 같았듯이,
갈 때도 부귀영화를 다 놓고 빈손으로 가기 때문에, 가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같을 것으로 보인다.
단지 어떻게 삶의 반경을 살아 왔느냐와 그 삶 속에서 함께했던 주위 사람들이 어떤 계층이냐에 따라서 장례식의 규모가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3 개월 전에 있었던 한 장례식은 아주 인상적이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골프를 치시며 노익장을 과시하셨던 80 이 넘으신 한 장로님의 이야기이다. 교통사고를 당하시고 퇴원하셨다가, 갑작이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이분은 내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로부터 일체 돈 봉투를 받지 말고 후히 음식을 잘 대접해하라는 유언을 자식들에게 하셨단다. 그래서 의례적으로 조의금을 들고 갔던 문상객들이 오히려 민망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분의 유언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참으로 죽음을 아시고 준비하신 멋진 삶 때문일 것이다.
5 년 전에 친구 몇이서 이분을 포함하여 골프장에서 연세가 많으신 분들을 식당으로 초대해서 점심을 대접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이 장로님이 대표로 식사 기도를 해 주셨는데 어찌나 우렁차고 경건하던지 그 기도가 하늘에 닿는 듯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우리 모두에게 죽음은 하루하루 앞당겨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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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장례식일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유언은 미리 써 놔야할까?☆ 그냥 사니까 사랑하는 척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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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어야 좋을까 집에서 병원에서?☆
마지막 날 무슨 음식을 그리고 어떤 옷을 입을 할까?☆
숨을 거두는 시간에 누구보고 내 옆에 있어달라고 해야 하나?☆
정말 삶 속에서 누구를 죽도록 사랑해 본 흔적은 있는 것일까?☆
마지막 말을 누구에게 무어라고 해야 할까?
오늘따라 삶의 여러 갈래가 생각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