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삶의 이야기

삶과 죽음

이해왕 선교사 2004. 6. 12. 07:47

지금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레이건 대통령의 국장으로 온통 애도의 물결이다.


나이가 들어서 일까?


지난주에는 내 삶의 정신적 의지가 되어주셨던 어머님께서 89 세에 운명하셨고, 금주에는 레이건 대통령 93 세에 서거하여 수십만 명의 조문행렬과 국장거행 장면이 연일 TV에 중개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더 생각을 하게 된다.


5 년 전까지만 해도 장례식에는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죽음에 대한 거부현상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요즘은 죽음이 두렵기 보다는 누구 나에게 다 오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어머님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는 내 차례라는 생각에 죽음의 현실과 가까워진 자신을 발견한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10 여일 전 저녁이었다. 하루 일과로 지쳐서인지 컴퓨터 작업을 하는데 졸음이 쏟아져서, 잠시 쉬면서, 어머님께 국제 전화를 걸었다. 이미 어머님은 겨우 “누구냐, 그래, 잘 있어라...” 할 정도만 겨우 말씀하실 기력이셨다. 


형님이 거들어서 간신히 어머님과 그렇게 몇 마디 전화통화를 한 직후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을 느꼈었다. 다음날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그 정신이 번쩍 들었던 체험을 이야기 했더니, 돌아 가시기전에 누군가 마음에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더러 그런 현상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어머님께서 돌아가실 날이 임박했으며, 어머님의 평소 강건하셨던 총명을 이 불효자에게 마지막으로 주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구를 위한 장례 의식일까?


자식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너나할 것 없이 살아계셨을 때 “좀더 잘해 드렸을 걸” 하는 후회들을 하게 마련이다. 


이번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너는 생각보다 매몰찬 사람이다”라는 말을 더러 들었다. 외국에 살고, 짧은 3 일장, 회복사역 스케줄, 생업 등등의 이유로 어머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내 마음에는 비록 돌아가셨어도 어머님의 영혼은 내 안에 함께 계신다는 생각에 장례의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주요 동기였다.


공교롭게도 1 주일 안에 어머님과 레이건 대통령의 마지막 가시는 길들을 보면서, 장례식은 죽은 사람보다도 산 사람들을 위한 의식인 것 같다는 생각을 더하게 된다.


처음 세상에 올 때는 모두가 빈손으로 두 주먹만 불끈 쥐고 태어나서, 너나 할 것 없이 상황이 똑 같았듯이, 
갈 때도 부귀영화를 다 놓고 빈손으로 가기 때문에, 가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같을 것으로 보인다.


단지 어떻게 삶의 반경을 살아 왔느냐와 그 삶 속에서 함께했던 주위 사람들이 어떤 계층이냐에 따라서 장례식의 규모가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3 개월 전에 있었던 한 장례식은 아주 인상적이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골프를 치시며 노익장을 과시하셨던 80 이 넘으신 한 장로님의 이야기이다. 교통사고를 당하시고 퇴원하셨다가, 갑작이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이분은 내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로부터 일체 돈 봉투를 받지 말고 후히 음식을 잘 대접해하라는 유언을 자식들에게 하셨단다. 그래서 의례적으로 조의금을 들고 갔던 문상객들이 오히려 민망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분의 유언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참으로 죽음을 아시고 준비하신 멋진 삶 때문일 것이다.


5 년 전에 친구 몇이서 이분을 포함하여 골프장에서 연세가 많으신 분들을 식당으로 초대해서 점심을 대접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이 장로님이 대표로 식사 기도를 해 주셨는데 어찌나 우렁차고 경건하던지 그 기도가 하늘에 닿는 듯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우리 모두에게 죽음은 하루하루 앞당겨 오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장례식일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유언은 미리 써 놔야할까?

  그냥 사니까 사랑하는 척 하는 것은 아닐까?

  어디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어야 좋을까 집에서 병원에서? 

  마지막 날 무슨 음식을 그리고 어떤 옷을 입을 할까?

  숨을 거두는 시간에 누구보고 내 옆에 있어달라고 해야 하나?

  정말 삶 속에서 누구를 죽도록 사랑해 본 흔적은 있는 것일까?

  마지막 말을 누구에게 무어라고 해야 할까?

 

오늘따라 삶의 여러 갈래가 생각되는 아침이다.